무주택자들 “영끌해도 이제 집 못 사”
수억씩 오르는 집값에 절망감
대출은 점점 줄어 매수 포기
서울 시내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물정보가 붙어 있다. /뉴스1
박씨의 말처럼 송파구에선 수년 전 8억~9억원이면 중형면적 새 아파트 매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같은 돈으로 전세를 살기도 벅차다. 무주택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전셋값까지 폭등하면서 무주택자들은 주거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황씨가 전세를 살고 있는 아파트만 해도 올 초 11억원 초반대에서 최근 14억원까지 몇 달새 3억원 가까이 상승했다. 황씨는 청약을 알아보고 있지만 이또한 여의치 않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소득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애매한 소득이 문제다. 분양을 받는다고 해도 정부의 대출 규제로 한계가 있다. 그는 영원히 전세 난민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황씨는 ”열심히 노력해 자수성가한 월급쟁이 흙수저들은 집을 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새 집을 분양받기도 힘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동구에서 2년째 전셋집에서 살고 있는 김모 씨(38)도 정부 정책만 믿다가 내 집 마련 기회를 모두 놓쳐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의 메시지를 믿다가 계속 전세만 살게 됐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김씨는 “2년 전 비싸도 일단 집을 사겠다고 나선 친구들은 몇 년 새 수억원을 벌었다”며 “일반 직장인이 4억~5억원씩을 어디서 벌겠나. 매매와 전세의 기로에서 한번 선택을 잘못했다가 부동산시장에서 낙오자가 된 것 같아 우울하다”고 토로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일대 아파트. /연합뉴스
생애 첫 부동산 매수인 수(전국 기준)도 2015년 53만명에서 작년에는 41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서울 지역만 보면 2015년에는 부동산을 처음으로 구입한 사람이 10만1000명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감소해 작년에는 5만7000명에 그쳤다.
이같은 현상이 나오는 까닭은 무주택자들이 주택을 매수하기 어려울 만큼 집값이 뛰었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 부동산 리브온의 월간 KB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9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0억312만원으로 처음으로 10억원을 돌파했다. 특히 서민층이 매수를 많이 하는 서울 외곽지역의 집값이 많이 뛰었다. 2년 새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금천구로 39.8% 상승했다. 노원구(39.3%), 금천구(38.7%), 중랑구(37.1%), 강북구(37.0%) 등이 37% 넘게 올라 뒤를 이었다. 도봉구(36.7%), 광진구(36.6%), 동대문구(35.7%), 서대문구(35.2%) 등도 35% 넘게 올랐다.
서울 부동산 전세가격 전망지수는 142.6이다. 통계가 집계된 2016년 1월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 4월 105를 기록한 이후 7월 131.9, 지난달 140.2로 매달 상승하고 있다. 이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전세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다.
강동구 고덕동의 ‘고덕 아르테온’ 전용 59㎡ 아파트 올 초만 해도 4억원 초반대정도에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7억원대로 호가가 치솟았다. 이달 입주를 시작하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뉴타운 ‘힐스테이트 클래시안’은 전용 59㎡ 전세 매물도 7억원에 나왔다. 지난 7월 초만 해도 5억원 정도였다.
서울 금천구에선 '금천롯데캐슬골드파크1차' 전용면적 59㎡는 지난 6월 2억8500만원에 전세 계약이 됐으나 지난달에는 2배에 가까운 5억원에 계약됐다. 지금은 호가 6억원에 나왔다. 서울 도봉구 '도봉한신' 전용 84㎡는 지난달 3억8000만원에 전세계약돼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두 달 전만 해도 2억원 중반대선에서 거래됐지만 임대차3법 통과 이후 뛰었다.
영등포구의 전용 59㎡ 아파트에 사는 한모씨(43)는 전세계약을 갱신하면서 집주인과 전세금을 7000만원 올리기로 구두로 합의했다. 하지만 임대차법이 나온 후 집주인이 "주변 전셋값이 갑자기 더 올랐다. 30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요청해와 날마다 밤잠을 설치고 있다. 한씨는 ”전셋값이 주변 시세에 비해 너무 낮으면 차라리 실거주를 하겠다며 전셋값을 올려달라고 성화“라면서 ”갑자기 몇천만원이라는 돈을 어디서 구하냐“고 하소연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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